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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강] 자아의 탄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5.10 05:17 조회 1,328

 

뇌 5
자아의 탄생, 나를 의식하는 나
강연자 : 강웅구(서울대 교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의사)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궁극적인 과제는 "의식이란 무엇인가"에 답하는 것이다.

의식은 뇌과학 뿐만 아니라 임상의학, 심리학, 철학(현상학), 진화론

심지어 양자역학에서 다루어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 강의는 다양한 분야의 관점을 참조하면서 의식의 기원과 기능,

정상 및 변화된 의식과 관련된 정신현상 등을 다루게 된다.


■ 강연자 : 강웅구(서울대 교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의사)
■ 패   널 : 김기현(서울대 철학과 교수), 정두석(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 사회자 : 김철훈(연세대 의과대학 교수)

 

 








 

강연개요 살펴보기

 

<자아의 탄생 : 나를 의식하는 나> 강연 주제는 의식에 대한 것이다.

의식의 문제는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다루고 있으며, 의미하는 바도 다양하다.

오래 전부터 철학의 주요 주제였으나 행동주의 또는 유물론에서는 의식이란 주제를 무시한다.

이 강연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 다루어지게 된다.

 

▶ 의식에 대한 몇 가지 다른 정의들을 검토하며, 주관성을 가지고 자신과 세계를 성찰할 수 있는 능력/기능으로서의 의식에 대해 논할 것이다. 무의식도 다양한   정의가 있으므로 여기에 대해서도 논할 것이다.


▶ 내가 대하고 있는 대상이 의식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논의한다. 이것은 의식에 대한 정의와 밀접하며, 의식에 대한 과학이 성립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방법론적 기준이 된다.


▶ 감각질(qualia), 지향성(intentionality), 통합성-전체성, 모듈 구조 등 의식의 속성 또는 의식을 설명할 때 중요한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이를 통해 이후 설명할 논의를 이해할 기초를 다진다.


▶ 의식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의식을 정보처리 기제(mechanism)와 관련 지어, 의식적 정보처리와 무의식적 정보처리, 의식적 행위와 무의식적 행위와 이들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 의식 지향성의 특징을 지각 결합 및 게슈탈트 원리, 행위의 측면에서 유명한 Libet의 실험을 통해 설명한다.


▶ 의식의 기능적 측면과 의식의 문제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검토할 것이다. “무의식적 지각 행위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한 동물에게 의식이 발생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문제를 설명하고자 한다.


▶ “의식은 뇌 과정의 부산물인가” 또는 “의식이 진정한 역할이 있는가”라는 문제에 접근하고, 의식과 신경계 활성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 의식의 모델로서 ‘global workspace’이론을 짚고 넘어간다.

 

▶ 의식과 언어, 의식과 자유의지의 문제에 대한 논점들을 짚어본다.

 

▶ 의식상태의 변화와 그와 연관된 신경계 및 정신질환에 대해 간단히 알아본다.

 

 

1. 의식과 무의식


1) 의식이란? : 의식에 대한 강의의 제목을 <자아의 탄생>으로 한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의식’이라는 용어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때 의식은 자신을 성찰할 능력 정도로 정의된다. 그러나 의식이란 용어는 학문분야별, 학자 별로 그 의미가 다르다.
임상의학, 특히 신경학에서 의식이란 양적인 개념으로, 자극에 대해 얼마나 선택적이고 목적지향적인 반응을 하는가로 정의된다. 이 배경에는 행동주의(behavioralism)가 있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객관적 관찰과 측정 가능한 것만 대상으로 삼는다. 임상의학 등 실용적 측면에서 유용하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식은 이보다 더 차원 높은 것, 나의 느끼는 바, 주관적 체험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주관적 체험에 대한 추구는 고대부터 철학의 기본 주제였다. 형이상학이 퇴조하고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학문을 지배하면서, 주관성에 대한 추구는 학문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의식은 과학의 영역에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설(Searle)이나 데닛(Dennett) 등 현대 철학자들은 자연과학적 발견과 철학적 개념을 결합하여 의식에 대한 이론을 펼친다.
현대 철학 중, “세계 속에서 체험하는 존재인 나”의 주관성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훗설(Husserl)에서 비롯된 현상학이라 할 것이다. 한편 현대의 자연과학, 신경과학에서는 고전적 행동주의에서 벗어나 주관적 체험과 관계된 뇌의 객관적 변화를 추구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2) 무의식(unconsciousness)이란? : 임상의학에서 의식이 현저히 감소한 혼수(coma)를 무의식 상태라 한다. 청명한 의식과 혼수 사이에는 의식이 감소하는 다양한 단계가 있다. 글라스고 혼수 척도(Glasgow coma scale)은 이를 점수로 평가하는 도구이다.
그러나 무의식은 우리 뇌에서 정보처리가 ‘인지(awareness)’ 없이 일어나는 상태를 의미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잠재의식(subconsciousness)이다. 무의식이 유명해진 것은 프로이트(Freud) 덕분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무심코” 하는 실수들은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 인과론을 따르는데, 이 원인을 스스로 인지할 수 없다는 의미로 무의식을 제창하였다. 정신분석이 발전하면서 무의식 개념은 자연과학적 접근에서 멀어졌지만, 프로이트가 원래 의미한 무의식은 현대의 개념과 오히려 더 비슷하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은 (1) 의식할 수 없는 마음의 내용이 있으며 (2) 그것이 어떤 행위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이 있다는 것은 여러 예를 통해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면후 피암시성’이다. 최면은 의식의 질적 변화가 온 상태인데, 최면 중 어떤 행동을 지시 받은 사람은 최면에서 벗어나 그 지시대로 행동한다. 나중에 물어보면 나름대로 이유와 구실을 말하지만, 이 경우 행위의 실제적 원인은 최면을 통해 들은 지시인데, 당사자는 이를 의식하지 못한다. 이런 현상들은 의식이 무엇이며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이해하는데 시사점을 준다.


정신현상 내지는 행동의 결정인에 대한 초기 자연과학적 접근이 방법적 제한으로 인해 별 성과가 없던 시절 대두된 것이 정신분석이었고, 정신의학에서 한때 정신분석적 개념이 번성하여 여전히 정신의학은 자연과학이 아닌 인문학에 가깝다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현대적 실험이 결여되어 있을 뿐 프로이트의 기본적 입장은 ‘자연과학-뇌과학적’이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은 당시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어 사변적인 것이 되었지만, 현대 심리학적 실험은 이런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2.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글라스고 혼수 척도는 반응성으로 정의된 의식을 양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대상자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없다.
존 설은 ‘인공지능’ 시스템이 단순히 알고리즘에 따라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목적지향적 행동을 하는 것인지 구분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른바 “Chinese Room” 검사인데, 검사자가 다양한 질문을 통해 대상자의 반응을 관찰할 때, 그 반응이 어떤 방법을 써서도 인간의 자연스런 반응과 구분할 수 없다면 그 컴퓨터 시스템에는 인간과 같은 의식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인간에게 상대방을 의인화하려는 자연스런 경향이 있음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쓰리피오 등 의도를 갖고 독립적인 판단을 하는 로봇은 SF의 단골 소재인데, 이들은 의식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영화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도 결국 대상자의 반응을 평가하는 것으로, 대상자가 어떤 주관적 체험을 하는지 평가할 수 있는 자연과학적 방법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의식은 과학적 탐구로 접근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한 시도가 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현상학이다. 현상학은 내가 주관성을 갖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출발하며, 현상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주관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3. 의식의 속성


1) 감각질(qualia) : ‘감각질’이란 ‘현재 내가 느끼는 체험의 전체’로, 언어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이를 테면 ‘내가 저녁 하늘의 붉은 노을을 보는 체험’이 감각질이 된다. 데닛은 이것을 “The ways things seem to us” 라 하였고, 통증을 느끼거나 붉은 색을 볼 때, 장미 냄새를 맡을 때의 기분 등을 예로 들었다.


감각질 자체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빨강색을 본 체험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같은 사과를 본 두 사람 A, B 중 A가 ‘저 사과는 빨강색이다’라고 말하고 B는 그 명제에 동의하게 된다. 물론 이때 A가 체험하는 ‘빨강성’, 즉 감각질이 B가 체험한 ‘빨강성’과 같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빨강을 보았을 때 B의 체험은 A가 빨강이 아닌 파랑을 보았을 때와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빨강’이라는 용어에 대해 A는 자신이 항상 체험하는 빨강을 떠올리고, B도 자신의 빨강을 떠올렸기 때문에 외부 대상이 빨강이라는 데에는 동의가 이뤄질 수 있다.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이다. 행동주의에서는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나고 의식에 대한 탐구가 더이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상학은 물리적 의미의 진실은 아니더라도, 상호주관성을 객관적이라고 가정함으로써 내가 저 사람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A와 B가 실제로 다른 체험을 하더라도, 이에 대한 탐구는 불가능하므로 ‘빨강’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자체를 동일 체험이라고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타인의 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일 수 있다.

 

2) 지향성(intentionality) 또는 ‘aboutness’ : ‘의도적(intentional)’이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내가 주위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를 설계하는 것과 관계한다. 이는 의식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의식의 또 다른 역할인 주위 정보를 인식하는 경우에도 ‘intention’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내게 인식되는 세상은 물리적 자극 자체가 아니라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외부와 관계 없이 자신의 머릿속을 탐색해 특정 기억을 회상하거나 생각을 만들어낼 때도 의식은 그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aboutness’라는 용어를 쓴다. 이때 의식되는 내용은 외부 환경 속의 대상, 대상으로서의 나뿐만 아니라 의식한다는 사실 자체(meta-consciousness)등이 있다.

 

3) 통합성-전체성 : ‘나’는 항상 ‘나’이다. 외부세상을 지각하는 것,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나’이며 내가 ‘나’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생각은 내가 하는 생각이다. 의식이 다양한 ‘모듈’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모델에서, 의식을 구성하는 다양한 정신 기능들은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나’는 항상 ‘나’를 하나로 느낀다. 이 최소한도의 ‘나’는 많은 병적인 경우에도 대개 보존된다. 심하게 혼돈된 환자가 말하면서 ‘나’라고 할 때도 그 ‘나’는 모든 체험의 주체이다. 현상학에서 말하는 수동적 종합(passive synthesis)은 이와 관계된다. 그러나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든 기괴한 병적 상태에선 의식의 통합성이 손상된 것처럼 보인다. 어떤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 생각을 강제로 집어넣는다”는 체험을 하는데, 나의 생각이 내가 만들어 낸 것이라는 느낌을 잃고 외부의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자아의 통합 자체는 의식적인 노력이 아닌 무의식의 작업이다.

 

4) 모듈 구조 및 다양한 단계 : 다양한 심리적 기능들이 의식에 참여한다. 따라서 의식의 기능이나 복잡성은 다양하며, 뇌 기능의 진화에 따라 종들 간 의식의 복잡성은 차이가 있고, 인간에서도 발달단계에 따라 의식에 등장하는 기능들이 달라질 수 있다.
의식이 모듈화되고 층화된 구조여서 복잡성을 갖는다면 ‘어느 수준까지 진화된 동물부터 의식을 갖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의식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와 관계된다.

예컨대 자극에 대한 선택적 운동 반응성을 기준으로 본다면 뇌가 발달하지 않은 하등동물도 의식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며, 종 내의 다른 개체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의식의 내용을 전달하는 기능을 의식의 조건으로 본다면 인간만이 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4. 의식의 역할

1) 의식과 정보처리 : 의식적 정보처리와 무의식적 정보처리는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평소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일을 어떤 계기로 의식적으로 할 수도 있으며, 의식적으로 하던 일이 습관화가 되어 의식 없이 할 수 있는 일로 되기도 한다. 복잡해 보이는 정보 처리도 의식의 개입 없이 가능하다.

 

2) 의식과 지각 : 눈에 비친 대상을 의식하기 위해서는 수십 밀리초가 걸린다. 그런데 더 짧은 시간 눈에 미친 대상은 의식되지 않지만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공포반응을 일으키는 뱀 사진을 10 밀리 초 보여준 뒤 곧 귀여운 강아지를 보여주면, 피험자는 귀여운 강아지만 인식하지만 그의 자율신경계는 공포반응을 나타낸다. 잊어버린 정보 또는 기억에서 제거된 정보도 의식에 도달하지 않지만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최면후 피암시성 등에서도 나타난다.

 

3) 의식과 행위 : 우리의 행위에 의식은 다양한 수준으로 개입한다.

 

(1) 반사 : 즉각적 반응이 필요한 자극에 대해 즉각적 반응, 신경회로에 고정된 행동양식으로 의식적 조작이 거의 개입할 수 없으며, 무의식상태에서도 일어난다. 예) 눈에 벌레가 날아드는 순간, 눈을 감는다

(2) 본능 및 항상성 : 정형화된 행위지만 고정적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의도적 조작이 가능하다. F reud는 문화가 이런 조절과 관계 있다고 본다. 진화생물학적으로 보면 gene과 meme이 상호작용 하는 것일 수 있다. 예) 배가 고파 음식을 먹는다.

(3) 자동화된 행위 : 처음에는 의도적 행위였지만 반복을 통해 의식의 개입이 없어도 행동하게 된다. 수시로 의도를 갖고 행동할 수도 있다. 예) 걷기

(4) 의도적 행위 : 상황에 대한 판단에 의거해 선택하는 행위로, 고정적이지 않다. 의식의 본연적 기능.     예) 오늘 어디 놀러 갈 것인지 계획하다.

 

이렇듯 고도의 뇌기능을 갖는 고등 동물만 의도적 행위가 가능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곤충이 다수의 동종 이성 중 특정 개체를 선택해 짝짓기하는 것은 의도적인가 아니면 본능에 따른 것인가? 인간에서도 특정 개체의 이성에 끌리는 것은 의도적인가? 그런 의도 내지 취향을 갖게 되는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5. 지향성

 

1) 지각의 지향성

 

(1) 지각 결합 Perceptual binding : 어떤 대상을 지각할 때, 다양한 정보(형태, 색깔 등)는 뇌의 서로 다른 부분에서 독립적으로 처리되지만 의식되는 순간에는 이 정보들이 통합된다. 뇌 손상에 의한 동시인식불능증 (simultanagnosia)이 생기면, 빨간 동그라미와 파란 세모를 각각 보여주었을 때 인식에 문제가 없지만, 두 대상을 동시에 보여주면 동그라미가 빨간 것인지 파란 것인지 헷갈린다. 이 통합은 무의식적 과정이며 때로 의식을 속인다.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의 말소리는 벽의 스피커에서 나오지만 우리는 화면 속의 사람이 말하는 것으로 지각한다. 이처럼 자극이 의식에 제시되어, 지향성을 갖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사전 처리과정이 필요하다.

(2) 게슈탈트 gestalt : 우리의 의식은 눈에 비친 대상을 어떤 의미 있는 것으로 파악하려는 성질이 있다. 우리는 시계 그림을 볼 때 ‘동그라미와 막대 두 개가 조합된 형태’로 파악하게 된다. 신경계의 하향성(top-down) 과정에 의한다고 할 것인데, 기본적인 gestalt들은 이미 뇌에 있고, 우리는 눈으로 받아들인 자극을 이 gestalt에 맞춤으로써 결국 지각되는 것은 대상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정형화된 gestalt의 집합으로서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정보의 양이 줄면서도 정보 검색을 쉽게 한다. Gestalt 특성을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가 착시이다. 망막에 맺힌 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실용적 의미를 부여하는 gestalt 때문에 지각 왜곡이 생기는 것이다. Gestalt 부여는 의식이 관여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자동적 현상이므로 우리의 의식이 이것이 착시임을 알더라도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착각한 상태 그대로이다.

 

2) 행위의 지향성

의식의 신경생물학적 연구에서 어려움 중 하나는 동물에게 그들의 경험을 언어로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동 관찰을 통해 동물과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동물이 의식을 갖는다고 추론하게 된다. 글래스고 코마 척도도 비슷한 원리이며 설의 Chinese Room Test 역시 이런 접근법이다. 그런데 환경에 대한 선택적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의식의 징표는 아니다. 복잡해 보이는 행동도 의식 없이 자동적으로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내 의식의 행위 지향성이 실제 행위와 관계 없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Libet의 실험장치는 시계바늘 같은 회전판(1)과, 뇌파 측정기(2), 그리고 피험자 행위의 대상이 되는 버튼(3)으로 구성된다. 피험자의 과제는 회전원판을 바라보고 있다가 스스로 결정한 어느 순간에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그리고 버튼을 누른 뒤, 자신이 결심한 그 순간은 회전원판의 눈금이 어디에 있을 때였다라고 실험자에 알려주면 된다. 뇌파 측정기가 측정하는 것은 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라는, 특정 운동반응이 준비되었을 때 나타나는 뇌파이다.

따라서 이 실험에서는 세가지 시점을 측정할 수 있다. 이 시점의 선후관계는 의식적으로 결심한 시점(1), 행위를 할 준비가 된 시점(2), 실제 행위한 시점(3)의 순서여야 한다. 그러나 밝혀진 사실은 시점의 순서가 (2) (1) (3)이라는 것이다. 즉, 주관적 결심(1)과 뇌에서의 준비(2) 이후에 행위(3)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상한 것은 뇌에서 행위를 할 준비(2)가 되는 것이 그 행위를 하겠다는 주관적 결심(1)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느끼기 이전에 뇌는 그 행위를 하겠다고 이미 결정한 상태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2)가 (1)과 (3)을 모두 일으키는 원인이 되지만, (2)는 일상생활에서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오직 (1)과 (3)만을 체험할 수 있는데, (1)이 항상 (3)에 선행하기 때문에 (1)을 (3)의 원인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결정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의식의 지향성이 실제 행위의 직접 원인은 아니라는 해석을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주제는 뒤에 자유의지와 관련하여 다시 다룰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100년 전 이미 프로이트가 스스로가 생각하는 행위의 원인은 실제 원인이 아닐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6. 의식의 진화


의식의 기능을 진화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진화론적인 관점은 ‘왜 의식이 생겼는가?’, ‘어느 수준의 동물부터 의식이 있는가?’ 에 대해 답을 찾으려 한다.


고려해야 할 것은 (1) 의식이 복잡 행동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2) 의식적으로 지각되지 않으면서 개체의 생존에 중요한 환경정보들도 많이 있다. (3) 의식은 종 별로 다양한 수준의 복잡성을 갖는다는 점 등이다. 이런 사항들은 의식이 동물에서 필수가 아닌 일종의 선택적(option) 항목임을 시사한다. 그런데 왜 이런 ‘option’이 채택되고 발전하여 동물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을까?
개체가 자극(입력)에 반응(출력)해서 자신을 보존하는 시스템이라면, 자신을 보존하는 것은 목적지향적 행위이고, 중추신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의 전달 및 통합 역시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의식의 기본 특징은 개체가 단일성을 느끼면서 정보를 중앙집권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정보가 국소적으로 처리될 때 보다 생존 가능성은 커진다. 예컨대 포식자가 나타난 것에 대한 시각적 지각, 청각적 지각, 포식자에 대한 기억, 도망가는 행위의 계획 등을 담당하는 기능들이 만든 정보가 중앙에 모여서 개체의 반응을 이끌어 낸다면, 정보처리를 위한 에너지 소모나 시간이 들더라도 즉각적인 반사반응보다 생존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자동차의 동작원리는 처음 개발되었을 때나 지금과 차이가 없지만, 현대의 차는 각종 센서와 조절기를 달고 있으며 내장 컴퓨터를 통해 정보를 모으고 조절기를 조절하는 등 성능이 향상되었다. 중앙집권적 정보처리의 결과이다. 그러나 목적지향을 위한 정보 중앙화가 꼭 ‘의식적’일 필요는 없다. 자동차 계기판에는 이런 정보들이 표시되지 않는다. 동물도 호르몬 시스템 등 생존적합적 정보처리 과정들은 의식이 없이도 가능하다. 그런데 자동차 컴퓨터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부딪히면 경고음과 계기판에 신호를 보내도록 설계되었다. 예견된 변화에만 대처 가능한 자동화된 처리 과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도 이런 상황에 대처하면서 진화된 것일 수 있다. 의식의 개입이 꼭 필요한 작업은 (1) 지속적이고 명시적인 정보 유지, (2) 조작들의 새로운 조합, (3) 의도적 행위 등이다. (Shallice, type C process)


의식의 성립 이후에도 복잡성의 단계는 종의 진화적 조건과 관계될 것이다. 인간의 뇌는 전체 에너지 중 20%를 소비하는 기관이므로 쓸데 없이 확장되면 개체의 에너지 효율을 떨어뜨려서 생존적합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7. 의식을 이해하기 위한 모델

 

1) Qualia(감각질)는 디스플레이인가? : 의식이 자동차 계기판처럼 상태를 관찰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가설은 그럴듯하나 중요한 난관에 부딪힌다. 자동차 계기판은 문제해결을 위해 신호를 보내 운전자에게 알려주지만, 의식의 qualia는 누구에게 보여지는 것인가? 우리 뇌에 소인간(homunculus)이 있어서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다 필요 시 결정 내려주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소인간의 뇌는 누가 모니터링하는가? 이는 끝없는 질문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의식의 기원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발생한 것이라는 가설은 적절한 해답이 못 되는 것이다.

물론 그냥 보여주는 것 자체도 목적일 수도 있다. 컴퓨터 모니터를 꺼도 컴퓨터는 작동하지만, 어떤 프로그램은 모니터에 보여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므로, 모니터를 켜지 않는다면 그 프로그램 자체가 무의미하다. 예컨대 오디오를 켜서 음악을 듣고 즐거워할 경우, 나의 qualia가 즐거움을 얻는 그 자체가 목적이며, 의식이 음악을 이용해 무언가 다른 processing을 하기 위한 도구인 것은 아니다.

 

2) 의식과 신경계 활성과의 관계 : 그렇다면 뇌의 정보처리와 의식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논의가 생긴다. 두 가지 대립적 입장 중 하나는 의식은 신경계 활성의 부산물(epiphenomenon)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대 입장은 신경계 활성과 의식현상은 독립적이라는 이원론(dualism)에 가까운 것이 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 이 논의는 자연과학적이라기보다는 형이상학적인 것 같다. 650 nm 파장의 빛을 보았을 때 우리는 붉은 색이라고 느낀다. 뇌과학자들이 찾아낸 사실은 650 nm의 파장에 가장 잘 반응하는 망막세포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 붉은색이라는 특이한 qualia가 빛 파장의 속성인지 신경계의 속성인지 주관적 느낌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그리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있다. Max Velmans가 주장한 는 타협적으로, 신경계 활성과 의식경험은 같은 현상을 다른 입장에서 보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제3자 관찰자 입장에서는 신경계 활성화인 것이 현상을 체험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qualia라는 것이다.

 

3) Global Workspace 이론 (Baars) : 이 이론에서 뇌는 다양한 모듈로 구성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개체로서 통합된 의식을 가지고 있고 통합된 행동을 한다. 개체가 통합적 행동을 위해 뇌 모듈간에는 소통을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운동 모듈은 지각 모듈의 신경학적 활성을 직접 파악할 수 없지만, 우리는 외부환경을 지각해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데, 이는 두 모듈간에 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 전달은 국소적으로 서로 관계되는 모듈 사이에서만 일어날 수도 있지만, 다양한 모듈들이 모두 참여하는 공통적 의사소통 네트워크를 통해 일어날 수도 있는데, 이때 생기는 현상이 의식이라는 것이다. 즉 모듈간 공통된 의사소통의 프로토콜과 그것이 이루어지는 영역이 있는데 이것이 global workspace 이다. 비유를 들자면 단체 카톡방과 같다. 현재 의식의 내용은 현재 global workspace 안에 활성화된 정보로, 그 순간 참여하고 있는 다른 모듈들에게 그 내용이 전달된다. (이 모듈 중에는 자신의 상태를 외부에 보고하는 모듈도 - Gazzaniga의 용어로 narrative interpreter - 있을 것이고, 이것은 “당신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소?” 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지금 OO을 생각하고 있었소”라는 대답을 할 수 있게 한다).

 

모듈 간에 off-line으로 국소적으로 교신되는 정보는 해당 모듈들의 동작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참여자들에게 알려지지(globalize) 않으므로 의식화되지 않는 무의식적 정보가 될 것이다. Global workspace는 신경계의 매 순간적 활성으로서 존재하지만 특정한 해부학적 구조물에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Global workspace는 관객(module)들이 열심히 관람하는 무대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무대 중에서도 순간 조명(searchlight)이 비춰지는 일부분만 관객들에게 보여지며 이 부분에 해당하는 정보만이 의식의 내용으로 공유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의식의 흐름이란, 조명이 비추는 부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조절되는지가 문제가 된다. 조명을 조절하는 기사는 무의식이라고 보면 된다. 의식 연구에서 하나의 패러독스는, 의식을 조절하는 것이 결국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8. 의식의 쟁점들

 

1) 언어 (개체간 의사소통) : 상대방이 의식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와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인간에게 의사소통은 주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의식 연구에는 기본적인 왜곡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언어적 소통을 통해 수집된 자료가 그 자체로서 의식을 반영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의식은 뇌의 모듈 간에 의사소통을 위한 공개적(public: 다양한 모듈이 같은 프로토콜로 교신한다는 의미에서) 도구이다. 한편 인간 집단에서 개인들 간에 의사소통을 위한 공개적 도구가 언어이다. 즉 기능적으로 개체의 의식은 집단에서 언어 비슷한 것이다.

 

개인의 뇌에서 모듈간 의사소통의 산물이 왜 qualia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 것일까? 그것은 의사소통 도구가 그런 특성을 갖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단순하기 때문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오컴의 면도날). 인간 언어에서도 개인간 의사소통을 위해 몸짓, 외침, 얼굴 표정 등이 모두 가능하고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특정한 음절로 구성된 목소리를 특정 규칙에 따라 발성하고 소통하는 것이 인간의 뇌에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언어라는 도구가 모든 인류 집단에 정착된 것으로 본다. 같은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 정보 공유를 위한 수단이 창발되는 것은 인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꿀벌의 비행패턴 등도 인간 언어처럼 진화의 과정에서 정착된 도구라 할 것이다. 종의 진화에 따라 다른 의사소통 수단이 개발되듯 의식 역시 종 특이적인 진화를 하였을 것이다.

 

의식의 qualia가 뇌 내의 소인간에게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언어 역시 누군가 인간 집단을 관장하는 meta-person을 위해 창조된 것은 아니다. 만들어진 뒤 문명 진화 과정에서 살아 남았고, 그 산물을 보는 오늘날 인류의 시각에서는 마치 그것이 어떤 의도적 존재가 만들어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도적 존재에 의한 어떤 법칙성, 즉 문법에 의해 언어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언어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언어학자들이 문법이라는 개념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qualia의 특성은 어떤 의도에 의해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과 진화과정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것이고, 오늘날의 신경과학자들은 언어를 설명하는 언어학자와 마찬가지로, qualia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의식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이다.

 

의사소통은 다른 종과도 가능할지 모른다. 인간이 동물이 경험하는 qualia에 대해 동물과 의사소통 할 수 있다면, 실험동물을 통한 의식 연구도 가능할 것이다. ‘쥐는 설탕을 맛있다고 느낄까?’에 대해 직접 쥐에게 물어볼 수 없지만, 설탕물과 맹물을 주면 쥐는 설탕물을 더 자주 마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행동은 인간과 쥐라는 종차를 떠나서 교신 가능하고, 인간은 이렇게 얻은 교신 내용에 자신의 경험을 동원해 쥐도 인간처럼  설탕물을 맛있다고 느낀다고(qualia) 추정한다. 타인이 설탕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설탕물을 좋아한다고 추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 의식과 자유의지 : 우리의 의식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면, 자유의지의 문제가 대두된다. 자유의지 역시 자연과학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닐 수 있지만 의지와 실제 행위와의 관계에 대한 Libet의 연구는 ‘자유의지가 있는가’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의식이 지향성을 갖는 것으로,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기능을 하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그런데 Libet의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개인의 의지가 행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Libet의 실험에서도 결정된 행위를 veto(거부)하는 기능을 논하고 있다. 더 기본적으로, 준비전위가 내가 의식하기 전에 나온다고 해서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의 자유의지를 느끼는 것이 실제 의지의 집행보다 늦다는 것일 수 있다. 피실험자가 실험에 참여하기로 동의한 것은 준비전위 보다 선행하는 것이고, 이 동의는 자신이 스스로 한 것이다. 실험에 참여한다는 동의가 없었다면 준비전위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의지는 이렇게 구제된다.

 

3)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 의식은 정보의 조직화와 중심화를 통해 시스템이 더 생존적합적 동작을 하도록 한다. 그러나 “의식의 내용을 무엇이 결정하는가”에 대해 해답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 의식에 왜 이것이 “떠오르는가?”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가 감각된 자극인데, 우리는 어느 한 순간 매우 많은 자극들을 접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배경자극이다. 이 중 소수의 대상만이 의식의 지향성을 받아 의식의 전경에 드러난다. 그런데 어떤 것이 전경에 드러나게 되는지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일 수 있다. 무의식이 다양한 정보를 스캔하고 있다가 가끔씩 의식에 올려주면 비로소 우리 의식은 그것을 인지한다는 모델이 성립할 수 있다.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먹는 순간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무의식의 작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의식이 무의식에 의존한다면 “절대적 자유의지”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무의식적인 현상은 의식에 의존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먹는 의식적 행위가 없었더라면, 무의식이 작용해도 그 장면이 연상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신의학의 인지행동 치료는 의식적 작업을 통해 무의식적(자동적)인 인지 행위의 동작방식을 바꾸려는 시도가 된다.

 

 

9. 의식과 정신질환


1) 의식의 양적인 감소 (혼수상태) : 전한 혼수상태란 어떤 외부 자극에도 그 자극에 대처하는 반응이 없는 상태이다. 이 중 뇌사상태란 의식이 없지만, 의식 없이도 가능하며 기본 생명유지에 필요한 뇌간 반사와 자발호흡 등도 없는 상태로서 인공호흡이 없으면 사망하게 된다. 식물인간은 의식이 없지만 기본적 생명유지에 필요한 반사는 가능하다. 영양분만 공급하면 생존은 유지된다.

2) 의식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 : 폐쇄(Locked-in) 증후군은 베르베르 소설 <뇌>에서 묘사된 바 있는데, 척수 고위부의 마비로 뇌에서 나오는 운동명령이 근육으로 집행되지 못하는 상태이다. 뇌간 상부에 있는 안구운동 중추는 마비되지 않으므로 눈 움직임은 가능할 수 있다. 자극에 대해 적절한 반응이 불가능하므로, 관찰자에게 환자는 의식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환자는 환경자극을 모두 체험하고 있는 상태이다.


3)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가성 목적지향적 행위가 나타나는 경우 : 자동증(automatism)은 일부 정신병적 상태나 측두엽간질(temporal lobe epilepsy)등에서 보이는데 목적지향적 행위로 보이는 일련의 복잡한 행동을 하지만, 당사자의 주관적 체험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이 상태 동안 환자의 주관적 체험은 ‘지워진’ 상태가 된다. 


4) 지각결합의 장애 : 시각정보 처리시 모양, 색깔, 움직임은 뇌의 다른 영역에서 처리되지만 의식될 때 지각결합이 일어나 한 대상의 속성으로 파악된다. 관련 부위의 손상으로 동시인식불능증(simultanagnosia)이 일어나면 빨간 동그라미와 파란 사각형을 같이 보았을 때 어느 것이 빨간 색인지 헷갈리는 식의 인식을 하게 된다.


5) 의식의 질적인 변화 : 해리상태에서 대상자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다. 무속인이 접신해서 그 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 등의 현상에서 볼 수 있다. 최면은 자신이 누구인지는 보존되지만, 의식의 대상에 변화가 와서 평소에 의식이 접근하지 못했던 기억과 감각 등을 인지하게 된다. 출근길에 무심코 지나쳐 보았던 차량의 번호판을 기억하거나 하는 식이다.

 

6) 정신병에서 의식의 변화 : 조현병 환자의 일부에서 지향성 체험에 문제가 나타난다. 환자는 자신의 생각, 감정이나 행동이 외부의 존재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체험을 하게 된다. 행동을 하는 것은 나인데(the sense of ownership) 그 행동을 하게 만드는 의지는(the sense of agency) 나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이런 피동체험은 의식의 미묘한 변화, 행위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에 대한 체험이 달라진 것과 관계된다고 생각된다. 


7) 강박 행위(강박증, 중독 환자의 약물 사용 등)와 의식 : 강박증 환자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 자신이 행동한다고 느끼는 것은 정상이지만, 이런 의지 자체가 자신의 의식으로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정신의학에 대한 몰이해 중의 하나는 정신증상(이상행동이나 체험들)이 마음먹기(자유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견해이다. 우울증은 툴툴 털어버리는 것을 못해서 걸리며, 알코올중독 환자가 술을 못 끊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의지는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으로서 강력하지 못하다. 의식의 내용만 다루는 단순 충고와 상담이 정신증상을 해결하는데 무력함은 잘 알려져 있다. 정신분석은 의식의 결정인인 무의식을 교정하려는 시도이다.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는 의식의 내용을 다루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무의식적 반응양상을 찾아내고 반복훈련을 통해서 특정 행동을 자동화(무의식화) 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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